
형제들을 대신해 일제에 끌려간 사할린의 조선인 징용공은 광복 뒤엔 무국적자가 됐다. 그렇게 조국에 돌아오지 못한 고(故) 이석동씨는 헤어진 지 36년 만에 편지로만 만날 수 있었던 아들 이희권씨에게 젊은 시절 가장 멋부리고 찍은 사진을 보냈다. "혹시 사할린에 내 이복동생은 없느냐"고 묻는 아들에게 그는 "여기서 가족을 만들면 영영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고 했다.
임현동 기자 올해로 광복 75년. 일제의 수탈에 배가 곯던 가족과 고향을 뒤로하고 끌려가야 했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780만 명.
푸르게 싱싱한 스무 살 안팎 조선의 청춘들은 암울했던 한국 현대사의 어둠을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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