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종은 동학농민운동이 발생하자 청국에게 군대 파병을 요청한다. 청국은 “조선에 중대한 사건이 발생해 중·일 양국 또는 어느 한 국가가 파병할 때 사전에 통보”한다는 톈진조약에 의거해 일본에 파병을 통보했고 청국과 일본의 군대가 조선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때 파견된 일본군은 8,000명에 달했는데 일본은 조선에 들어올 때부터 청국과의 전쟁을 고려하는 등 조선을 식민지화 하려는 야욕을 숨기지 않았다. 일본군은 경복궁을 점령했으며 청국군 1,100명을 수송하던 선박을 공격했다.
청일전쟁의 시작이었다. 화보로 보는 『러일전쟁』 -1, 한길사 네이버 포스트 1904년 2월 17일자 『브룩클린 이글』(Brooklyn Eagle)에 실린 「너무나도 헌신적인」 그림에서 짓밟히고 있는 인물, 즉 조선은 “나는 이로써 귀하가 조선 영내를 종단하는 것을 허가한다”라고 쓴 종이를 들고 있다.
그 아래로 흐르는 강에는 ‘압록강’이라고 쓰여 있고 발끝에는 ‘만주 방면’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사진, 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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