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천 도자 발전의 뿌리 [기고] 이천 도자 발전의 뿌리](https://mblogthumb-phinf.pstatic.net/MjAyNDA1MTBfMjYy/MDAxNzE1MzE2NTQxMDkz.j9_tfAIVcEVC5O2vFJmACYBhsSMF0Oarmz3Qm0R50jQg.PmzRKsGR5dNoiOjFpuojR5oIIU57KKhy5fqqUaTyNJsg.JPEG/%C0%CC%C8%A3%BF%B5.jpg?type=w2)
- 이천 칠기(漆器)와 청자 발전.평면 자기의 탄생 - 이 호 영 ( 한얼도예 대표 ) 1. 발생과 변천 현재 이천 도자기의 발생에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알 수 없으나 근현대사에서는 이천시 신둔면 수광1리(미나리) 12번지의 칠기가마 존재를 빼놓고는 전통 도자의 근원을 찾을 수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근 광주가 자기 생산지로 조선 왕조의 세월만큼 장기간 명맥을 유지하였던 것은 목재의 무성함과 비교적 한양과 가까우며 한강과 지천의 수로를 통한 교통의 편리함이 연유가 되었고, 이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자기 재료인 흙이 주변에서 생산되었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이화여대 박물관(1986), 광주조선백자요지 발굴조사보고,P.6)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지리지’ (1432년, 세종14년) 편에는 당시 전국의 도기소 185개, 자기소 139개 총 324개가 있었으며, 1531년 발행된 ‘동국여지승람‘ 이천 편에는 이천의 특산물이 백옥과 도기를 꼽고 있어 이천 도기의 역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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