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가까운 이들이 세상을 등질 때마다 나이듦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성찰을 안겨준다. 괴테는 바이마르에서 80세가 지나서 『파우스트』를 완성했지만 그 같은 내공은 여간해선 쉽지 않은 일이다.

생의 끝까지 누구나가 오체불만족이 아니길 바라지만 오롯하게 존재의 의지로 일상을 살다 떠나는 것은 절대 녹록지 않다. 자기 몸 하나 지탱할 최소한의 건강도 허락되지 않거나, 신이 내린 가장 가혹한 형벌이라는 기억의 유실과 맞닥뜨리기도 한다.

사랑하는 이들의 품 안에서 지극히 평온한 모습으로 다음 생을 기약하는 죽음을 꿈꾸지만, 대개는 질환의 고통 속에서 병원 혹은 낯선 요양원에서 속절없이 생을 마감하는 노인들이 점차 늘고 있는 통한의 현실이다. 일찍이 플라톤은 ‘늙음에 만족할 때 늙음을 지탱할 수 있지만, 그 반대라면 늙음 자체가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된다’고 했으니 삶의 형편에 따른 늙음의 삶의 질은 시대를 구분하지 않았나 보다.

긴 병에 효자 없다. 먹고사는 일들로 척박한 경쟁 사회 속에서 아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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