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팽년(朴彭年)유허비 1668년(현종9)에세워진박팽년(朴彭年)의유허비이다.비문은노론의영수이며성리학의대가인우암송시열(宋時烈,1607~1689)이글을짓고우암과함께서인에속하며예학에밝고문장에능했던동춘당(同春堂)송준길(宋浚吉,1606~1672)과숙종의장인이며경서에밝아사림의명망을받았던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민유중(閔維重,1630~1687)이글씨를썼다. 비문은박팽년의유지(遺址)가허물어지고식별할수없게되어회덕현의원로들이유허지를망실하게될까걱정하여비석을세우고사실을기록한다는경위를기술하였다 박팽년 선생 집터.
박팽년 (朴彭年 1417∼1456(태종 17∼...) 조선 초기의 문신.
자는 인수, 호는 취금헌(醉琴軒). 본관은 순천(順天).
회덕(懷德) 출신. 단종복위운동 때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1434년(세종 16) 알성문과(謁聖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며, 1447년 문과중시에 을과로 다시 급제하고, 1453년(단종 1) 우승지를 거쳐 이듬해 형조참판이 되었다.
세종 때 신숙주(申叔舟)·최항(崔恒)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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